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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일 간의 유럽 여행 9일차 세비야대성당 (스페인 세비야 2일 1/2)Travel | Picture/유럽여행(Europe) 2018. 11. 2. 09:02
오늘은 세비야 대성당과 스페인광장 그리고 과달키비르 강을 보러 갑니다.
천천히 준비를 한 후에 1시쯤되서 나왔습니다.
아침은 그냥 호텔 앞 버거킹으로 떼웠습니다.
점점 게을러 지고 있습니다.ㅎㅎLas Setas De Sevilla 라는 곳으로 왔습니다.
직역하면 세비야의 버섯? 이라는 곳입니다.
나무로 지어진 거대한 조형물이 있는데 이곳은 고고학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위에는 루프탑 전망대가 있습니다.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날은 루프탑 전망대를 운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조형물만 감상하다가 이동했습니다.
이제 세비야 중심가를 둘러봅니다.
이슬람양식들도 많이 보입니다.
중간에 많은 건장한 사내들이 뭔가를 들고 가는게 보입니다.
저게 뭐하는걸까요..
물어보고 싶었으나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살바도르 성당입니다.
살바도르 성당에서 티켓을 구입하면 기다릴필요없이 바로 표를 구매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세비야대성당에서 구매를 하려면 사람이 많아서 오래 기다려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살바도르 성당에서 파는 티켓은 살바도르 성당 + 세비야대성당 통합권 입니다.
가격은 약간 더 비싼 정도입니다.살바도르 성당도 나름 멋있습니다.
슬슬 성당들이 비슷비슷해보이기 시작합니다.이제 세비야 대성당으로 이동합니다.
세비야 대성당은 유럽에서 3번째로 큰 성당으로
정식명칭은 성모 마리아 주교좌 대성당입니다.
1172년에 착공하여 1198년에 모스크로 건설이 되었으며 당시 크기는 길이 135m에
너비 100m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후 1400년대에 지금의 성당과 같은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기존 이슬람의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그대로 성당을 건설했기 때문에
다른 성당들과는 달리 크기가 큰 편입니다.
초기에는 고딕양식으로 지어졌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르네상스, 바로크, 네오 고딕 양식등이
반영되어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내부에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관이 안치되어 있어 더욱 유명해지기도 하였습니다.사람들이 땡볕아래에서 줄을 서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날은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앉아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보입니다.
드디어 입장하였습니다.
세비야 대성당에 들어서면 처음에는 대성당에 있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방으로 들어 갑니다.전시실을 지나 이제 대성당의 중앙홀로 들어갑니다.
중간에 화장실이 있습니다.
이런 조그만 터널을 지나야 합니다.
드디어 세비야 대성당 내부입니다.
크기가 엄청나게 거대합니다.
갑자기 거대한 감동 같은 것이 몰려옵니다.그리고 콜럼버스의 무덤이 있습니다.
콜럼버스는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입니다.
어려서부터 바다항해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커서 포르투갈로 온 후에
포르투갈의 왕에게 대서양 항해를 제안하였으나 퇴짜를 맞고 스페인으로 왔습니다.
당시 스페인은 이사벨 1세 여왕과 페르난도 2세 왕이 공동통치하는 카스티야와 페르난도 2세가 단독 통치하는 아라곤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이사벨 1세 여왕은 해외진출에 큰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콜럼버스와 손을 잡고
대서양 항해에 대한 지원을 합니다.
콜럼버스는 결국 신대륙 발견에 성공했고 애초 스페인 왕실과 계약한 대로 대가를 요구하였으나
스페인왕실은 제대로 된 대우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이게 격분한 콜럼버스는 자신이 죽으면 절대 스페인 땅에 뭍히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콜럼버스는 스페인 남부 바야돌리드에서 사망하였으며 그의 평소 유언대로
스페인이 아닌 산토도밍고에 있는 대성당에 뭍혔습니다.(현재 도미니카 공화국 수도)
그러나 도미니카에 대한 식민종주국 지위를 잃으면서 쿠바의 하바나로 이동시켰는데
또다시 쿠바에 대한 식민지배 지위도 잃게 됩니다.
그로인해 스페인은 콜럼버스의 유해를 자국으로 송환합니다.
결국 현재의 세비야 대성당에 뭍히게 됩니다.콜럼버스의 관이 떠있는 이유는 생전 스페인 땅에는 뭍히지 않겠다는 그의 유언을
존중하여 위에 띄워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4명의 가톨릭 왕들이 떠받치고 있는데 앞에 고개를 세우고 있는 2명의 왕은
콜럼버스와 항해에 대한 지원을 해준 왕들이며 뒤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2명의 왕은
지원을 하지 않은 왕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콜럼버스가 스페인에서 사망했을때
그의 장례식에는 스페인의 귀족 어느 누구도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콜럼버스와 왕실간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재밌는 것은 1800년대 후반 갑자기 산토도밍고에 콜럼버스의 유해가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상자가 발견되었고 산토도밍고는 이를 통해 콜럼버스 기념관을 설립하고 관을 전시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세비야에 있는 콜럼버스의 유해가 진짜가 아닐 것이라는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합니다.
결국 2000년대에 들어서 스페인쪽에서 콜럼버스의 동생인 디에고와의 DNA 대조를 통해
콜럼버스의 유해가 맞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나 더욱 어처구니없게도 이를 확인했던 법의학팀이 2010년대에 들어서 번복을 해버립니다.
이로인해 현재는 유해의 진위여부에 대해 오리무중에 빠져있는 상태입니다.
참고로 도미니카에 있는 콜럼버스의 유해로 추정되는 것은 고인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이유로
도미니카 쪽에서 DNA 검사를 거부하고 있다고 합니다.그렇다면 스페인의 왕도 아니고 어떻게보면 그냥 탐험가에 불가한 콜럼버스의 무덤이
세비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대성당에 안치 될 수 있었던 걸까요.
그것은 바로 세비야=콜럼버스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비야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많은 부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도시에는 금화, 은등의 재물이 넘쳐나게 되었고
결국 세비야대성당, 황금의 탑, 세비야 대학과 같은 세비야의 상징적인 건축물 들 또한
이러한 재물을 이용해 건축할 수 있었던 것이었죠.
이를 통해 스페인은 16세기 유럽 최강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세비야가 스페인을 넘어 유럽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가 될 수 있었습니다.카톨릭 대성당 들의 특징이 보입니다.
대성당 바로 옆에는 카톨릭 양식과 이슬람 양식이 혼재되어 있는
히랄다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성당내부에 입구가 있기 때문에 바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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